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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결혼 및 혼인신고

이탈리아에서 결혼한 이야기 Part IV - 의상 준비, 결혼식

결혼 날짜가 당장 6주 후로 잡혔다.

코로나 때문에 신랑신부, 사진사, 통역사를 포함한 모든 인원은 15명 이내여야 했다.

부모님도 못 모시고 올리는 결혼식인데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시청 결혼식은 약식이다.

결혼식이 오후 2시 20분인데 시간이 워낙 애매해서 식사 대접이 어렵다.

유감스럽지만 2차 락다운이 다가오고 있다. 식당이나 까페, 펍이 닫을 확률이 높고 집에서도 모일 수 없다(예감 적중).

결정적으로 평일 예식이라 많은 사람들 초대하면 그 사람들이 모두 휴가를 내야 한다.

 

결론 : 신랑신부, 통역인, 사진사, 증인1, 증인2 이렇게 여섯 명만 모이자!!

 

포토샵으로 청첩장을 만들어 디자이너인 남자친구에게 수정 및 컨펌을 받고 인쇄소에 맡겼다.

이틀 만에 청첩장 준비가 끝났으며 통역 해주기로 한 친구, 사진 찍어주기로 한 친구, 증인 해 주기로 한 친구들에게 각각 따로 식사 대접을 하고 청첩장을 전달했다.

 

여기는 드레스를 대여하기보다 구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대여하는 가격 + 세탁비 = 아울렛에서 구매하는 가격 이라서 우리는 아울렛에서 의상을 구매했다. 근데 나중에 보니까 드레스가 너무 촌스러워서 엄청 후회 했음.... ㅠㅠ 차라리 그냥 깔끔한 하얀 롱원피스 사서 레이스 달아 입을 걸 그랬다.

 

결혼식을 약 2주 앞둔 시점, 락다운이 결정되었다.

다행히 결혼식 자체가 금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로연이 금지되었다.

결혼식에 와 줄 사람들에게 식사대접은 커녕 와인이나 샴페인 한 잔도 나누어 마시지 못 하는 것이 확정 되었다.

우리 둘 다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서 작은 결혼식을 하는 것에 대해 딱히 속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간 내어 참석해준 사람들과 식사 한 끼, 술 한 잔 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미안했다.

결혼식에 와 준 친구들에게 딱히 대접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답례품과 편지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착한 남자친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화려한 프로포즈나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만 나오면 나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정작 나에게 결혼식은 그냥 혼인신고를 하기 위한 하나의 미션일 뿐, 딱히 크고 화려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ㅎㅎ

그리고 이미 결혼하기로 한 마당에 화려한 프로포즈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 결혼기념일마다 예쁜 옷 입고 사진이나 찍자고 했다.

 

 


결혼식 당일.

오후 2시 20분에 결혼식 예정이었다.

신랑신부, 통역인, 증인은 15분 일찍 도착하여 신분증 검사와 계약(재산 관리 등) 내용을 확인 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음 여리고 순수한, 남자친구의 회사 동료(신랑 측 증인)는 아침 10시부터 전화로 "15분 말고 한 시간 일찍 갈까?"라며 본인이 더 들떠했다.

 

우리는 평소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이 날은 내가 드레스를 입을 예정이라 전날에 택시 예약을 했다.

혹시 택시가 늦게 올까봐 조금 일찍 예약했는데 정말로 시간 딱 맞춰서 도착했으며 락다운 때문에 차도 별로 없어서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심지어 중간에 부케 놓고 온 거 생각나서 되돌아 갔었다ㅎㅎㅎ

 

그런데 남자친구 회사 동료가 우리 보다 먼저 와 있었다. 우리도 40분 일찍 도착 했는데.....

나중에 부케 던졌을 때도 얼떨결에 이 친구가 받아버려서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다.

 

아무튼 모두가 예정된 시간에 도착해주었는데 문제는 시청 문이 닫혀 있었음 ㅋㅋㅋㅋㅋ

정확하게는 시청 건물에 들어가면 왼쪽에 안내데스크가 있고 오른쪽 쇠창살 문을 통과해야 결혼식에 쓰는 방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출입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아직 복귀를 안 해서 밖에서 2시 30분까지 기다렸다 ㅎㅎㅎㅎ 

 

그리고 건물에 들어간 후에도 앞의 결혼식이 좀 늦어지는 바람에 더 기다려야 했으며 실제로 결혼식은 2시 50분쯤 시작했다.

먼저 하객과 증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면 신랑신부가 들어간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이 사회를 봐주는데 부부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관련 법조항 몇 가지를 나열한 후 영화에서 나오듯 "OOO 씨는 XXX 씨를 신부로 맞이하는 것에 동의합니까?"  "증인 여러분도 대답을 들으셨습니까?" 라고 의례적인 질문을 한다.

 

그리고 둘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며 가족수첩과 토리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를 그린 그림을 준다.

가족수첩에는 우리의 이름과 서명, 담당 공무원의 서명이 적혀 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의 정보를 입력할 공간도 있는데 총 9장이나 있으니 마음껏 채워나가라고 농담도 하셨다 ㅎㅎ

 

솔직히 아직도 정말 결혼을 한 것인지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그냥 예전처럼 둘이 같이 게임도 하고 식사도 하고 서로 챙겨주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며 재미있게 지낼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수많은 서류 작업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