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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일상생활 이야기

[이탈리아]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이탈리아 상황

00. 초기 대응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은 전쟁이라도 난 것 같다고 소식이 들려온다.

현재 이탈리아는 중국, 한국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세번째로 가장 많이 나온 국가이다.

 

이 곳에 살면서 느낀 것은, 이탈리아가 매우 1차원적이고... 과감한 국가라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초반에 확진자 한 명이 생기자 중국발 항공편을 모두 막았었다.

로마의 어떤 학교는 아시아 학생들에게 수업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문을 보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그 때는 아직 유럽 언론에서도 '우한 코로나'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던, 코로나19가 막 퍼지기 시작한 초창기였으며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확진자가 많지 않았었다.

 

따라서 

1. '모든 아시아 학생들'을 싸잡아 바이러스 취급을 했다

2. 재학중인 대부분의 아시아 학생들은 이민 2, 3세로서, 평생 이탈리아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3. 유학생들도 본국에는 몇 년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인데 무작정 수업 참여를 금지시켰다

4. 그렇게 걱정 되면 수업 자체를 취소시켰어야지, 바이러스 검사도 없이 수업 들을 권리를 침해했다

 

라는 점을 들어, 이탈리아에 아직도 만연해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그 학교 일부 교수들도 해당 사건에 대해 매우 미안하고 부끄러워했다.

 

아무튼 이런 이탈리아의 극단적인 조치가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EU의 특성상 다른 유럽국가를 경유해 들어오는 사람들까지는 막을 수 없었고, 이탈리아에서도 확진자가 하나 둘 늘어나고 사망자가 나왔다.

 

사망자가 나오고 이태리 북부를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늘어나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이태리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시작했다.

 

01. 토리노 첫 확진자

 

2/22 토요일

 

우리 집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병원에서 첫 토리노 거주 확진자가 나왔다.

기사를 읽다가 병원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거의 항상 그 쪽에서 tram을 타는데...

 

환자는 40대 남성인데, 중국에 다녀온 친구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건강한 상태이고 친구는 코로나 테스트 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한다.

 

Ivrea 오렌지 축제에 가기로 했었는데... 기차표를 취소해야 할지 처음으로 고민을 했다.

게다가 토리노에 거주하는 중국인 여자가 코로나 사태 때문에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와서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하지만 계속 돌아다녔음 ㅋㅋㅋ)

 

2/23 일요일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인 베니스 축제가 취소되었고 Ivrea 오렌지 축제도 취소되었다.

다른 축제도 취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기차표 환불에 대한 고민은 자동으로 사라졌다.

 

저녁에는 모든 대학 및 학교, 사설 교육기관,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동아리 활동 등이 일주일간 금지된다는 기사가 지역신문에 떴다.

어떤 회사들은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사람들이 마스크를 마구 구매하기 시작했다.

약국 마다 입구에 '마스크 재고 없음'이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정작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못 봤다 ^^

 

 

03. 개인적으로 겪은 불편

 

초창기

아직 중국 우한에서만 확진자가 늘어나던 때였다.

어느 주말, 다른 아시아 출신 친구와 걸어가고 있었는데 친구가 라이터를 깜빡했다고 하며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라이터를 빌렸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면서 할아버지가 "잠깐만! 당신 중국인 아냐? 코로나 바이러스!!!!!!" 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남편이 매우 부끄러운 듯 했다 ㅋㅋ

 

"우리 중국인 아니고, 중국에는 가 본 적도 없다"라고 내가 대답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그냥 가려고 하시는데, 할아버지가 "그럼 어디서 왔냐"라고 묻길래 "한국인이다"라고 했더니

"한국도 중국 바로 옆에 있잖아!!! 오, 맘마미아~" 

좀 짜증나서 뭐라고 쏘아붙이려는데 , 친구가 웃으면서 할아버지 옆으로 가더니 콜록콜록 기침하는 시늉을 했다.

재치 있는 친구 덕분에 웃어 넘겼지만 솔직히 좀 짜증났다. 자기들이 더 더러우면서 ㅎㅎㅎ

 

 

2/24 월요일

주말에 프랑스 리옹에 다녀오려고 했다.

(사실 1월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해열제 먹고 공항 통과한 우한출신 여자가 리옹의 어느 고급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기사를 보고 일정을 취소했었다. 조금 기다리면 사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확진자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근데 이 날, 밀라노에서 출발한 flixbus가 리옹 perrache역에서 차단된 채 무한정 대기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밀라노는 이번에 코로나 환자가 가장 많이 나온 도시 중 하나이다.

해당 버스는 밀라노에서 출발, 토리노를 거쳐 리옹으로 가는 버스로, 평소에 리옹에 가기 위해 내가 이용하는 버스이다.

왠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아 6유로 주고 버스를 취소했다...

 

저녁에 장을 보러 갔더니 밀가루, 파스타, 고기, 캔, 시리얼, 멸균우유, 계란 등의 진열대가 휑하니 비어있었다.

사람들이 사재기를 했다고 한다. 

음... 그냥 내일 와서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갔다.

 

 

2/26 수요일

 

사실 토리노에 오고나서부터 아토피가 생겼다.

토리노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연 등 공기중 오염물질 배출이 되지 않는다.

산에 가서 토리노를 바라보면 오염물질이 구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라고 한다.

 

몸이 가려운건 그럭저럭 참을만한데 눈이 가려운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긁고 비벼댔더니 결막염이 생겼다.

이 시국에 병원 가기가 무서워서 약국에서 구입한 안약으로 버텼는데 2주 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뒤늦게 안과에 갔다.

 

내가 들어가니 접수하는 사람 부터 의사까지 초긴장 상태다.

토리노에 온지 몇 주 되었냐고 묻길래 두 달 되었다고 했고, 우한 출신이냐고 묻길래 나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때 한국도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상태라 "ma sono coreana!!!"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나만 마스크를 씌우고, 나만 작은 방에서 혼자 대기시켰다. 

토리노에 온 지 두달이나 됐고 감기기운도 한번도 없었는데 좀 억울했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가 괜히 미안했는지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이렇게 마스크도 씌우고 한다. 당신의 안전을 위한거니 이해해달라"라고 말했다. 거짓말인 것 뻔히 알지만 그렇게라도 말해주니 고마웠다.

그래도 대기하는 내내 죄 지은 것 같아 괜히 눈치 보였다 ㅎㅎ

 

04. 현재상황

현재 확진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토리노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politecnico에서도 확진자가 3명 발견되었다.

이탈리아는 현재 3/15일까지 모든 교육시설들을 폐쇄하라고 지침을 내린 상태이며 온라인 수업 지원을 위해 프로그램 구매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리노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그냥 감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그럼 도대체 왜 마스크 사재기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다들 외출은 자제하는 것 같다.  주말에도 거리가 텅 비어있다.

 

아직까지 나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시비를 걸어온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마트에서 줄 서있을 때 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끔 있다. 

 

토리노에 처음 올 때, 한국 다이소에서 1회용 알콜스왑을 한 통 사왔었다.

휴대폰, 눈썹칼 등을 소독할 때 사용하는데, 사오기를 정말 잘했다.

 

여기서는 90퍼센트로 희석한 알콜을 사서 분무기로 신발과 문손잡이, 외투 등에 뿌려주고 있다.

옷 위에 뿌리기만 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말도 꽤 많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니까.

겨울 코트를 매일 세탁할 수 는 없잖아요.

 

음... 지금 중국이나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코로나 검사를 종종 요구한다고 한다.

본인은 출국한 적이 없다고 해도 평소 교류하는 사람들 중 접촉자나 감염자가 있을 수 있어서이다.

 

또, 많은 회사의 업무가 마비되어 구인공고도 많이 줄었다.

한국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사태가 빨리 진정되었으면 좋겠다.